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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순간을 위한 변명

오랫동안 게임을 참 좋아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모니터 속 가상 세계일지 모르지만, 제게 게임은 일상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제 삶에서 아주 소중했던 풍경 하나가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퇴근 후나 주말에 습관처럼 켜던 롤이나 오버워치 같은 팀 게임들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게임을 지워버린 것은 아닙니다. 실력이 예전만 못해서도 아닙니다. 실행 버튼 위에서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다가 자연스럽게 멀어졌을 뿐입니다. 그저 게임 안을 가득 채운 '실수를 대하는 각박한 방식'에 제 마음이 지쳤던 것 같습니다. 온라인 게임은 언제부턴가 함께 성장하는 즐거움을 나누는 놀이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대신 아주 작은 판단 실수나 미숙함이 보이자마자 날 선 비난이 쏟아지는 시험대가 되..

기록과 관찰 2025.12.21

"정답은 많아요. 이제 송곳을 깍으세요."

비즈니스 세계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단순히 '제품이 좋다'는 홍보만으로는 고객의 선택을 받기 어렵습니다. 수많은 기업이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온드미디어 채널을 운영하는 데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지만, 정작 고객의 반응은 차갑기만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발행하는 콘텐츠가 구글 검색 결과나 AI의 답변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어디에나 있는 콘텐츠'는 가치를 지니지 못합니다. 오히려 브랜드의 정체성을 흐릿하게 만들 뿐이죠. 이제 콘텐츠 마케팅의 성패는 '오직 우리 채널에서만 볼 수 있는 뾰족한 콘텐츠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AI가 '어디서 본 듯한 뻔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내놓는 요즘, 콘텐츠 마케터가 집중해야 할 '우리만의 이..

콘텐츠 전략 2025.12.19

장비는 '투자'인데, 직원은 왜 '비용'일까?

스타트업을 운영하거나 함께 성장하는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끔 묘한 괴리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업무 효율을 높여주는 유료 SaaS 툴을 도입하거나 근사한 오피스로 이전하는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흔히 이를 ‘성장을 위한 투자’라고 부릅니다. 미래를 위해 당연히 지불해야 할 대가로 여기죠. 하지만 같은 회의실에서 ‘구성원을 위한 교육 지원’이나 ‘업무 환경 개선’, 혹은 ‘적정한 보상 체계의 수립’에 대해 논의할 때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곤 합니다. 이때부터는 ‘투자’라는 단어 대신 ‘비용’이나 ‘지출’이라는 단어가 더 자주 등장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의 선택’ 뒤에 숨겨진 생각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도구는 ‘기반’, 사람은 ‘도약’스타트업이 투자라고..

스타트업 문화 2025.12.18

“저기, 팀장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후 3시쯤, 메신저로 날아온 팀원의 이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는 리더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회의실을 잡고 마주 앉은 그 짧은 순간,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습니다. 흥미로운 건 퇴사를 통보하는 직원 역시 편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더 좋은 기회를 찾아 떠나는 축하받을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죄인 모드가 되곤 합니다. '정말 죄송하지만…'이라는 말로 말문을 여는 경우가 태반이죠. 우리는 왜 회사를 떠나는 일을 ‘배신’이라 느끼고, 보내주는 일을 ‘손해’라고 여기며 서로를 불편해할까요? 이제는 이 오래된 ‘퇴사의 공식’을 바꿔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퇴사는 ‘졸업’입니다과거에는 한 직장에서 정년까지 다니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그러니 중간에..

일하는 방식 2025.12.18

고객 이탈률을 줄이는 서론의 기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이탈률'만큼 뼈아픈 지표가 또 있을까요? 밤새워 자료를 찾고 공들여 쓴 글인데, 고객이 들어온 지 3초 만에 나가버린다면 그건 글의 내용 문제가 아닙니다. 십중팔구,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서론'의 문제입니다. 고객은 냉정합니다. 그들은 당신의 글을 '정독'하기 위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정답'을 찾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서론에서 그 답을 줄 것 같은 확신을 주지 못한다면?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뒤로 가기'를 누릅니다. 그들에게는 당신의 글 말고도 클릭할 수 있는 수십 개의 검색 결과가 더 있으니까요. 제가 다양한 온드미디어 채널을 성장시키며 확인한 데이터는 명확했습니다. '서론은 인사가 아니라 전략적 예고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콘텐츠 전략 2025.12.13

"고객은 당신의 메시지를 기다리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합니다. 주머니 속에서 느껴지는 그 미세한 떨림에 우리는 무의식적인 기대감을 품습니다. '중요한 연락일까?' '기다리던 택배 소식인가?' '혹시, 그 사람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화면을 켭니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건 0.5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화면을 채운 것은 내가 언제 동의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브랜드의 광고성 카카오톡 메시지입니다. "000님, 오늘만 드리는 시크릿 혜택!"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손가락은 익숙하게 '차단' 버튼을 찾아 헤맵니다. 나에게 이득이 될지도 모를 정보였지만, 맥락 없는 침입은 그저 소음일 뿐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메시지를 보낸 마케터는 지금 이 순간에도 화면 반대편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클릭률을 0...

콘텐츠 전략 2025.12.02

우리는 왜 콘텐츠에 출처만 남기면 안심하는가?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실무자들에게 '자료 조사'는 업무의 시작이자 절반입니다. 유튜브에서 요즘 유행하는 영상들을 찾아보고, 구글 검색으로 기획에 필요한 정보들을 모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익숙한 과정에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범하는, 하지만 매우 위험할 수 있는 착각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바로 '출처를 밝혔으니 사용해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콘텐츠 하단이나 카드뉴스 마지막 장에 출처를 남기면서 묘한 심리적 안정감을 느낍니다. 원작자의 이름을 알렸으니 최소한의 예의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저작권법적으로도 나를 보호하는 방패막이가 될 것이라 믿는 것이죠.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출처 표기는 결코 저작권 침해의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 --- ---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

일하는 방식 2025.12.01

정보 과잉 시대, 콘텐츠 마케터의 생존 무기 '큐레이션'

지난 글에서 우리는 콘텐츠 속에 숨겨진 맥락을 읽어내는 눈, 즉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단순히 기술적으로 잘 만든 콘텐츠인지를 넘어, 이것이 대중에게 어떤 사회적 의미로 읽힐지 간파하는 능력이야말로 브랜드의 리스크를 막아주는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비만 잘해서는 경기를 이길 수 없습니다. 리터러시가 맥락을 읽어 위험을 막는 방패라면, 우리에게는 그 맥락을 엮어 성과를 만들어낼 날카로운 창 '큐레이션'이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마케터가 가질 수 있는 강력한 무기 중 하나인 '큐레이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 --- --- 바야흐로 정보 과잉의 시대입니다. 검색창에 키워드 하나만 넣어도 몇 초 만에 수십 개의 문서가 쏟아집니다. 과거에는 정보를 ..

콘텐츠 전략 2025.11.30

잘 쓴 카피 한 줄보다 '맥락을 읽는 눈'이 더 비싼 시대

지난 8월 광복절을 맞아 여러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들이 앞다퉈 '휘날리는 태극기' 영상을 업로드했습니다. AI가 생성해 낸 영상들은 헐리우드 영화처럼 웅장하고 비장미가 넘쳤습니다. 담당자들은 '고퀄리티 영상'을 뽑아냈다며 뿌듯한 마음으로 업로드 버튼을 눌렀을 겁니다. 하지만 곧 댓글 창에는 날카로운 지적들이 쏟아졌습니다. '태극기 4괘(건곤감리) 위치가 다 엉망이네요.' '태극 문양 위아래 색깔이 바뀐 것도 모르고 올리신 건가요?' AI가 학습 과정에서 패턴을 임의로 조합하다 보니 국기의 기본 요소조차 틀리게 그려낸 것입니다. 담당자가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기술은 뛰어났을지 몰라도, 결과물 속에 숨겨진 팩트 오류를 걸러낼 '눈'은 미처 챙기지 못한 탓입니다. 이 씁쓸한 해프닝은 콘텐츠 직군에서 일하는 사람들..

콘텐츠 전략 2025.11.29

"어렵게 쓰느라 고생하셨네요. 근데 고객은 안 읽습니다."

20년 전, 사회생활의 첫발을 기자로 내디뎠던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당시 제가 쓴 기사는 온통 딱딱한 한자어와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문어체 표현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면은 한정되어 있었고, 정해진 원고지 매수 안에 글을 꽉 채워 넣으려면 친절하게 풀어쓰기보다는 함축적인 단어를 고르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으니까요. '자세히 밝히다'라는 말 대신 '규명(糾明)'을, '서로 돕다'라는 네 글자 대신 '공조(共助)'라는 두 글자를 쓰는 식이었죠. 긴 설명을 짧은 한자어로 치환하는 것, 그것은 좁은 지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가 익혀야 했던 일종의 생존 기술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솔직히 고백하건대 제가 어려운 말을 고집했던 이유가 단지 '지면의 제약'..

콘텐츠 전략 2025.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