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방식

“저기, 팀장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Ko_Peter 2025. 12. 18. 00:00

 

오후 3시쯤, 메신저로 날아온 팀원의 이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는 리더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회의실을 잡고 마주 앉은 그 짧은 순간,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습니다.

흥미로운 건 퇴사를 통보하는 직원 역시 편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더 좋은 기회를 찾아 떠나는 축하받을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죄인 모드가 되곤 합니다. '정말 죄송하지만…'이라는 말로 말문을 여는 경우가 태반이죠.

우리는 왜 회사를 떠나는 일을 ‘배신’이라 느끼고, 보내주는 일을 ‘손해’라고 여기며 서로를 불편해할까요? 이제는 이 오래된 ‘퇴사의 공식’을 바꿔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퇴사는 ‘졸업’입니다

과거에는 한 직장에서 정년까지 다니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그러니 중간에 나가는 것은 의리 없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직장인에게 이직은 내 커리어를 성장시키는 당연한 과정이자 생존 전략이 되었습니다.

이제 퇴사를 ‘관계의 단절’이 아닌 ‘관계의 변화’로 바라봐야 합니다. 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모교와의 인연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듯 직원이 회사를 떠나는 것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졸업’과 같습니다.

회사는 떠나는 직원을 ‘배신자’가 아닌, 우리 회사의 문화를 경험하고 밖으로 나가는 ‘졸업생’으로 대우해야 합니다. 쿨하게 보내주고 진심으로 응원해 줄 때 그 직원은 밖에서 우리 회사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줍니다.

'내가 다녀봤는데, 거기 정말 좋은 회사야'라고 말해주는 전 직원의 한마디가 수천만 원짜리 채용 광고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소유가 아닌 ‘동맹’의 관계입니다

이 글을 올리는 링크드인의 창업자 '리드 호프만'은 그의 저서 <얼라이언스(The Alliance)>에서 기업과 직원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그는 회사가 직원을 ‘가족’이라고 부르며 무조건적인 희생이나 영원한 충성을 요구하는 것은 구시대적 착각이라고 지적합니다.

대신 그는 '직원을 소유하려 들지 말고 ‘동맹’을 맺으라'고 조언합니다. 이는 서로의 목적이 일치하는 기간 동안, 함께 싸우고 서로의 성장을 돕는 강력한 파트너십을 의미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퇴사는 관계의 배신이 아니라 약속된 미션을 완수하고 ‘동맹의 형태가 바뀌는 시점’일 뿐입니다. 회사 안에 있을 때는 내부의 동지로, 회사 밖으로 나가면 외부의 우군으로 관계가 이어지는 것이죠.

"당신이 우리 회사에서 빛나는 성과를 내준다면, 우리도 당신의 커리어 가치를 높여주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건강한 동맹입니다. 이렇게 맺어진 신뢰 관계는 직원이 퇴사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넓은 네트워크로 확장됩니다.

 

마지막 기억이 관계의 유효기간을 결정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동맹을 맺었더라도 헤어지는 과정이 엉망이라면 그 관계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심리학의 ‘피크엔드 법칙’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어떤 경험 전체를 평균 내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강렬했던 순간(Peak)과 마지막 순간(End)의 감정만으로 그 경험을 판단한다는 이론입니다. 지난 수년간의 회사 생활이 아무리 즐거웠어도 퇴사하는 마지막 일주일이 냉랭했다면 그 직원은 회사를 ‘최악’으로 기억하게 됩니다.

입사할 때는 웰컴 키트까지 주며 환대했던 회사가, 퇴사 통보를 하자마자 투명 인간 취급을 하거나 눈치를 준다면 어떨까요? 그 순간 과거의 좋았던 기억은 모두 지워지고 ‘배신감’만 남게 됩니다.

반대로 업무가 힘들고 갈등이 있었더라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당신 덕분에 우리가 성장했다'며 진심 어린 배웅을 받는다면, 그곳은 ‘언젠가 다시 돌아오고 싶은 곳’으로 기억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업들이 채용(온보딩)만큼이나 ‘오프보딩’에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잘 헤어지는 과정은 떠나는 사람을 위한 예의일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직원들에게 '이 회사는 사람을 소모품으로 쓰지 않는구나'라는 심리적 안전감을 주는 최고의 내부 브랜딩이기 때문입니다.

 

떠나는 사람의 매너가 다음 커리어를 엽니다

물론 회사만 노력해서 될 일은 아닙니다. 떠나는 직원에게도 지켜야 할 ‘이별의 예의’가 있습니다. '어차피 나갈 곳인데 뭐'라며 인수인계를 대충 하거나 짐을 싸듯 마음을 닫아버리는 태도는 위험합니다.

업계는 생각보다 훨씬 좁습니다. 오늘의 동료가 내일의 클라이언트가 될 수도 있고, 이직한 회사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남기고 간 인수인계 문서는 나의 ‘업무 능력’을 증명하는 마지막 포트폴리오이고, 내가 보여준 마지막 태도는 나의 ‘평판’ 그 자체가 됩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은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깔끔하고 프로페셔널한 마무리는 언제든 웃으며 다시 연락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줍니다.

 

이제, 웃으며 헤어집시다

건강한 조직이란 들어오는 사람을 환영하는 만큼 떠나는 사람을 잘 보내주는 조직입니다.

회사는 더 큰 무대로 나가는 동료의 앞길을 축복해 주고, 직원은 자신이 성장했던 터전에 감사함을 표하며 깔끔하게 마침표를 찍는 문화. 그런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우리의 퇴근길뿐만 아니라 퇴사길도 조금은 더 가볍고 산뜻해지지 않을까요?

누군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했을 때 가슴 철렁한 공포가 아니라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하러 가시나요?'라고 물으며 커피 한 잔을 권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회사는 직원을 소유하는 곳이 아니라, 잠시 머물며 서로 성장하는 정거장입니다. 이제 퇴사를 너무 불편해하지 맙시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퇴사자가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