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관찰

법제화로 다가온 스테이블코인의 시대

Ko_Peter 2025. 8. 25. 11:13

 

2017년에 처음 블록체인을 접한 뒤로 저는 여러 방식으로 이 분야와 함께해 왔습니다. 미디어 편집장으로 산업의 흐름을 기록했고, 온·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하며 사람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코인 백서를 집필하고 관련 서적을 내기도 했으며, 기업과 프로젝트의 홍보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블록체인의 다양한 면을 가까이서 경험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업종에서 일하고 있지만, 블록체인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품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기술이 우리의 생활을 더 낫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바람이 있었죠.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지켜본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 속도와 실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있었습니다.

 

블록체인과 코인은 끊임없이 진화해 왔지만, 실제 생활을 바꿀 만한 서비스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대부분은 결제 포인트를 대체하거나 투자 수단에 머물렀고,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사례는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블록체인은 여전히 ‘가능성은 크지만 멀게 느껴지는 기술’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법제화 이슈로 주목받는 ‘스테이블코인’은 조금 다릅니다. 기존 코인이 가진 가장 큰 한계인 가격 변동성을 보완하고, 실제 화폐 가치와 연동된다는 점에서 제도권 금융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코인 투자’의 틀에 머물지 않고, 금융의 기본 기능인 결제와 송금에 직접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도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급결제용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규제하는 법안을 정식으로 통과시켰고, 유럽은 'MiCA(암호자산 시장 규제)'를 통해 암호자산 전반을 포괄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홍콩은 발행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했고, 한국 역시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통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허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논의는 가능성을 넘어 실현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이제 중요한 건 스테이블코인 법제화가 현실이 될 때 우리의 삶과 금융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여러 변화가 있겠지만, 저는 크게 세 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1. 해외 송금 비용과 시간 절감

한때 각종 코인이 ‘국경 없는 송금 수단’으로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두 가지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먼저 송금 과정에서 가치가 크게 변동해 받는 사람이 제때 필요한 금액을 확보하지 못할 위험이 있었고, 또 거래마다 높은 수수료가 붙어 소액 송금에는 부담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100만 원을 보냈는데 수신자가 받는 시점에는 80만 원으로 줄고, 그마저도 중간 수수료가 빠져나간다면 안정적인 송금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런 위험을 크게 줄여줍니다. 화폐 가치와 연동돼 있어 ‘보낸 만큼 그대로’ 전달되고, 중개 단계를 줄여 수수료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해외 노동자나 유학생의 생활비 송금 같은 실질적인 상황에서 강력한 대안이 됩니다.

 

2. 온라인 상거래 결제 안정성 확보

예전에도 온라인 상거래에서 코인을 결제 도구로 활용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테슬라는 비트코인 결제를 도입했다가 가격 변동 문제로 철회한 바 있습니다.

 

기존 코인은 결제 전후로 가격이 급격히 오르내리면 판매자와 소비자 중 누군가는 반드시 손해를 보는 구조였습니다. 이런 불안정성 때문에 대형 전자상거래 업체조차 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도입했다가 철회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가치가 실제 화폐와 연동돼 있어 결제 금액이 변하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안정적인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고, 판매자는 받은 대금을 그대로 확보할 수 있어, 전자상거래의 실질적인 결제 수단이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3. 새로운 디지털 금융서비스 창출

블록체인 기반 금융 서비스는 이미 여러 차례 시도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존 코인은 변동성이 크고 규제 환경이 불확실해 대중이 신뢰하기 어려웠습니다. 높은 수익을 내세운 서비스들도 있었지만, 안정성과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해 한정된 참여자들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치가 고정돼 있다는 점에서 기존 금융 서비스와 바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예금, 대출, 보험 같은 전통 금융의 영역에 안정적으로 접목될 수 있고, 법제화가 이뤄지면 기존 금융권과 연계된 새로운 디지털 금융서비스가 확산될 수 있습니다. 이는 블록체인의 가능성을 ‘투자 수단’에서 ‘생활 속 서비스’로 옮기는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국제 무역의 결제 효율화, 공공 서비스와의 연계, 새로운 투자 상품의 등장 등 다양한 변화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부 지원금이나 장학금 지급 같은 공적 서비스도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더 빠르고 투명하게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의 기술적 진보를 넘어 제도권 금융과 일상 서비스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규제 때문에 멈춰 있던 여러 기술적 시도도 새롭게 활용될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블록체인이 ‘가능성의 기술’이었다면, 스테이블코인은 ‘현실의 기술’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제도화 과정에서 금융 안정성과 투자자 보호, 국제 규제 조율 같은 과제도 함께 다뤄져야 합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화폐와 연동된다는 특성상, 발행 주체의 신뢰성과 준비금 관리 방식은 반드시 투명하게 공개돼야 합니다.

 

아울러 국가 간 송금이나 무역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규제 충돌도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금융 불안정을 키울 수 있기에 기술의 도입만큼이나 관리와 감독 체계를 확립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테이블코인은 법제화를 계기로 블록체인이 현실의 금융 질서와 맞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실질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동시에 앞으로의 제도 안착 과정에서 금융과 사회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매개체로 자리할 가능성도 큽니다. 따라서 스테이블코인의 미래는 단순히 제도화 여부에 그치지 않고, 금융 안정과 혁신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아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앞으로 스테이블코인이 만들어 갈 변화는 블록체인 산업의 성장을 넘어 금융 안정과 혁신의 균형을 시험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블록체인이 오랫동안 약속해 온 가능성이 실제 제도와 생활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는지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금융 환경 전반에 새로운 질서를 여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