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 인지도가 낮았던 신생 콘텐츠 플랫폼의 팀장으로 합류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그 플랫폼은 겉보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매일 새 글들이 올라왔고, 타 콘텐츠 플랫폼이나 브런치에서 제법 유명한 필진들의 글도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비해 정작 사이트로 들어오는 순수 유입자와 체류 시간은 몇 달째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미세하게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매달 적지 않은 예산이 외부 콘텐츠 수급 비용으로 나가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죠.
사실 전임자가 운영하던 방식은 콘텐츠 전문가가 봤을 때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어디선가 '좋은 글' 같아 보이면 가져오는 식이었죠. 특히 다수의 글을 가져오기 위해 필진들에게 다른 채널에 동시에 글을 올려도 상관없다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편리함'이 만든 약점
바로 그 지점에 실수가 있었습니다. 외부 필진들이 우리 플랫폼에 글을 기고하는 동시에 본인의 개인 블로그나 브런치, 혹은 다른 경쟁 플랫폼에도 똑같은 글을 그대로 올릴 수 있었던 겁니다.
심지어 우리 쪽에 글이 발행된 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다른 채널에 그대로 올려도 제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굳이 우리 사이트에 들어와서 이 글을 읽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자기가 평소에 자주 쓰던 플랫폼이나 포털 검색을 통해 필진의 블로그에서 편하게 읽으면 그만이었으니까요.
당시 우리 플랫폼은 그저 외부 필진들의 개인 채널 트래픽을 올려주는 '확성기' 역할만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건 콘텐츠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였습니다. 플랫폼의 생존을 위해서는 독자가 오직 우리 사이트에서만 그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독점적 가치'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내부 시스템과 계약 조건을 완전히 통째로 뜯어고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경영진과의 이견, 그리고 든든했던 팀원들
다행히 내부 팀원들은 제 뜻을 깊이 이해하고 든든한 편이 되어 주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경영진이었습니다. 경영진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경영진이 가장 걱정했던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당장 계약 조건을 독점으로 바꾸면 글 개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 텐데 그걸 감당할 수 있겠냐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부 리소스'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에서는 기고받은 글의 1차 편집과 문장 검수, 교정 교열 작업을 우리 내부에서 전부 진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늘어나고 개인의 리소스가 과하게 투입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날것의 글 100개를 쌓아두는 것보다 내부에서 제대로 편집하고 정제하여 '여기서만 볼 수 있는 독점 글' 10개를 보여주는 게 플랫폼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으니까요. 다행히 우려하던 경영진도 제 설득에 개편을 동의했습니다.
일방적인 강요 대신 합당한 대가와 밀착 편집으로
필진 한 분 한 분을 설득하는 지루하고 지난한 조율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사이트에만 글을 올리세요'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지 않았고, 독점 기고에 대한 합당한 비용을 확실하게 더 지불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와 함께 우리 플랫폼과 필진이 어떻게 동시에 성장할 수 있는지, 독점 콘텐츠를 통해 양측이 얻을 수 있는 장기적인 시너지와 방향성을 정리해서 차근차근 설명했습니다.
기존의 편한 방식을 거부하는 과정이었기에 정말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었습니다. 계약서 조항 하나를 두고 며칠씩 줄다리기를 하기도 했고, 끝내 뜻이 맞지 않아 오랜 기간 함께했던 필진과 아쉬운 이별을 하기도 했습니다.
'장소의 대체 불가능성'을 증명한 짜릿한 우상향 지표
하지만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진짜 '오직 우리 사이트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들로 채우기 시작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정체되어 있던 유입률이 눈에 띄게 우상향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글 어디서 봐요?'라는 질문에 당연하듯 '우리 플랫폼 링크'로 답이 나가기 시작하면서, 독자들은 신생 사이트에 기꺼이 찾아오고 머물게 됐습니다.
기존의 익숙했던 운영 방식을 바꾼 결과가 숫자로 증명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때의 기쁨은 아직도 제 커리어에서 가장 짜릿한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많은 콘텐츠 전문가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까?'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콘텐츠가 존재하는 '장소의 대체 불가능성'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길거리 어디서나 흔하게 팔고 있다면 굳이 멀리 있는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가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지금 여러분이 운영하고 있는 브랜드 채널이나 플랫폼은 어떤가요? 독자들이 다른 곳을 다 제쳐두고 '굳이 여러분의 공간으로 찾아와야만 하는 진짜 이유'를 제공하고 있나요?
지표를 움직이는 건 콘텐츠의 양이 아니라 장소가 가진 대체 불가능성입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글 100개를 쌓아두는 것보다 오직 우리 공간에서만 소비되는 글 10개가 플랫폼을 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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