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의 직무에 책임을 지고 오래 일하다 보니
어느새 조직 안에서 ‘먼저 걷는 사람’이 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처음엔 그저 주어진 일을 잘 해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일보다 더 중요한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였습니다.
내가 내딛는 걸음 하나, 말 한 마디, 문서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참고가 되고 기준이 되는 걸 알게 되면서, ‘모범’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리게 됐습니다. 그게 꼭 잘나서가 아니라 앞서 걷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요.
그러던 중 우연히 이 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발걸음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내가 오늘 남기는 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결국 뒤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되리니
이 시를 읽는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하는 결정 하나, 행동 하나가
조직에 생각보다 깊게 남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눈 덮인 들판에서는 아무렇게나 걷는 걸음이
뒤따르는 사람을 더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길이 헷갈리고, 발이 빠지고, 때론 더 먼 길을 돌게 만들지요.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걷는 사람이 무심코 남긴 흔적이
뒤에 오는 이들의 기준이 되고 습관이 되기도 합니다.
리더가 된다는 건,
늘 정답을 말하거나 완벽해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다만 내가 걷는 이 길이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그만큼 책임감 있는 태도로 걷는다는 뜻이겠지요.
지금 내가 쓰는 문서 하나, 설명하는 방식 하나,
문제를 푸는 태도 하나까지도 누군가에겐 참고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니 우리는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곧게 걸으려 애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직은 함께 걷는 사람들의 무리입니다.
눈이 덮인 들판에서 누군가 먼저 길을 내면,
그 길을 따라 걷는 이들도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내가 남긴 걸음이 누군가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걸 떠올리며,
조용히 그리고 똑바로 걷는 일.
그게 혼자가 아닌, 함께 일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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