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방식

채용 공고에 '성장'은 넘치는데, 왜 '보상'은 비어 있을까?

Ko_Peter 2025. 11. 21. 11:12

 

요즘 틈날 때마다 습관처럼 채용 사이트를 구경하곤 합니다. 꼭 지원하지 않더라도 시장의 흐름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문득 흥미롭지만 조금은 우려스러운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회사가 지원자에게 요구하는 내용은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입니다. 어떤 기술 스택을 써야 하는지, 하루에 처리해야 할 업무량은 어느 정도인지, 앞으로 담당할 프로젝트의 난이도는 얼마나 높은지 상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지원자가 받아야 할 대우에 대한 이야기는 없을까요?

우리는 보통 계약을 할 때 '주는 것'과 '받는 것'을 명확히 합니다. 하지만 요즘 채용 시장에서는 이 균형이 무너진 듯합니다. 과거에는 흔히 볼 수 있었던 '회사 내규에 따름', '면접 후 협의', '경력에 따른 대우'라는 최소한의 문구조차 잘 보기 힘듭니다. 구체적인 연봉 범위나 인센티브, 야근 수당에 대한 기준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 빈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요?

바로 '성장'과 '장미빛 미래'입니다. 공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에 오면 당신은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업계 최고의 동료들과 함께 압축적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좋은 동료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하는 것은 직장 생활의 큰 기쁨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회사가 약속하는 성장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보상이 명시되지 않은 채 '성장'만을 강조하는 채용 공고는 자칫 위험한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회사가 지원자의 열정을 담보로, 정량적인 보상을 뒤로 미루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돈보다는 배우는 자세로 일하라'는 말은 신입 사원이나 주니어 경력자에게 특히 강력한 압박으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성장 중심'의 보상 체계는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할까요?

우리는 여기서 '포괄임금제'라는 현실적인 제도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포괄임금제란 쉽게 말해, 실제로 일한 시간과 상관없이 매달 정해진 금액의 야근 수당을 미리 월급에 포함해서 주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근로계약서에 서명할 때, 월급 안에 이미 '연장 근로 수당'이 포함되어 있다는 조항을 봅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이 정시 퇴근을 하든,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든 월급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같습니다.

많은 직장인이 법정 근로 한도인 주 52시간에 육박하도록 일합니다. 때로는 프로젝트 마감을 맞추기 위해, 혹은 회사가 말한 그 '압축적인 성장'을 위해 52시간을 넘기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급여 명세서에는 추가된 노동에 대한 숫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포괄임금'이라는 이름으로 퉁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열심히 하면 성장한다"는 말 뒤에는 "추가 비용 없이 당신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수 있습니다.

성장은 분명 개인에게 남는 자산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투입된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없다면, 그것은 공정한 거래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요?

먼저 채용을 담당하는 분들이라면 공고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공고는 지원자와 맺는 첫 번째 약속이니까요. 지원자에게 바라는 역량이 높고 구체적이라면, 회사가 돌려줄 수 있는 보상도 그만큼 명확한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꼭 연봉을 높게 적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성과를 냈을 때 어떤 기준으로 보상하는지, 야근이나 초과 근무는 어떻게 챙겨주는지 사실대로 적어주는 게 좋습니다. '좋은 동료'와 '성장'은 회사가 베푸는 혜택이라기보다 직원들이 일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이걸 회사가 주는 유일한 보상인 것처럼 내세우면 곤란합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도 조금 더 용기를 내보면 어떨까요?

면접이나 처우를 논의할 때 궁금한 건 물어봐야 합니다. "이 일을 하면 제가 얼마나 성장하나요?"라는 질문도 좋지만, "제 노력과 성과에 대해 회사는 어떻게 보상하나요?"라는 질문도 꼭 필요합니다. 돈 이야기를 꺼내는 건 속물적인 게 아닙니다. 내 시간과 노동의 가치를 확인하는, 일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과정입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 성장합니다. 하지만 성장을 위해 일하는 건 아닙니다. 내 삶을 꾸리고, 정당한 대가를 얻기 위해 일합니다. 회사가 보여주는 멋진 청사진 속에 내 노력에 대한 계산서가 빠져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짚어보세요.

'성장'이라는 말 대신, 그 안에 담긴 진짜 '조건'을 들여다보면 좋겠습니다. 건강한 관계는 막연한 약속이 아니라, 투명한 이야기에서 시작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