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관찰

AI로 기술은 좋아졌는데, 왜 고객은 서비스를 공부하며 써야 할까?

Ko_Peter 2026. 5. 11. 09:30

 

얼마 전 저는 ‘어렵게 쓰는 것은 게으름이고, 쉽게 쓰는 것이 실력이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개발자들이 기술 블로그를 쓸 때 자신의 편리를 위해 어렵고 딱딱한 용어를 고집하는 심리를 짚어본 글이었죠.

핵심은 간단했습니다. 내가 아는 걸 남에게 쉽게 설명하는 건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이고, 그 수고를 하기 싫어서 전문 용어 뒤로 숨는 건 그냥 게으른 것이라는 점입니다.

요즘 쏟아지는 AI 서비스들을 보면서 그때와 비슷한 생각이 듭니다. 만드는 사람이 자기 편한 대로 만들어 놓고, 고객에게는 '정말 대단한 도구니까 공부해서 쓰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서비스를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글쓰기를 넘어 서비스 기획에서도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고객에게 어려움을 강조하는 건 기업의 게으름이고, 쉽게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 진짜 실력입니다.


복잡함은 제작자가 할 일을 다 하지 않았다는 증거

많은 고객이 서비스가 복잡하면 '내가 잘 몰라서 그런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고객의 잘못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 할 일을 다 안 한 것입니다.

예전 글에서 말했던 ‘지식의 저주’는 서비스 기획에서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기획자는 자기가 만든 구조가 머릿속에 훤히 그려지니까 고객도 당연히 알 거라고 착각합니다.

그렇게 자신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사용 흐름을 고객도 당연히 알 것이라고 착각하며 불친절한 서비스를 던져놓습니다.

이런 불친절함을 기술력으로 포장하기보다는 고객이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더 고민해야 합니다. 그 시간을 아끼는 순간, 서비스는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고객에게 또 다른 ‘일거리’가 됩니다.


프롬프트는 고객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현대판 장벽

이런 제작자의 게으름이 요즘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바로 AI 서비스의 ‘프롬프트’입니다.

원래 AI는 복잡한 과정을 대신 처리해 우리를 편하게 해주려고 나온 기술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이제 질문을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어떤 명령어를 섞어야 더 똑똑한 답이 나오는지 따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 글에서 비판했던 '영어 약자와 전문 용어로 가득한 글'이, 지금은 '복잡한 프롬프트 입력창'으로 바뀐 것뿐입니다. 

고객의 투박한 언어를 기술의 언어로 번역하는 수고를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데, 그 숙제를 사용자에게 떠넘기는 건 명백한 게으름입니다.

편리함을 내세우면서 정작 소수의 기술 엘리트만 편한 서비스를 만드는 건 결국 기획자가 단순화라는 고도의 지적 노동을 포기했다는 뜻입니다. 도구를 쓰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면, 그건 이미 좋은 도구가 아닙니다.


만드는 속도보다 중요한 건 고객을 위해 다듬는 정성

더 심각한 건 AI 덕분에 서비스를 만드는 것 자체가 너무 쉬워졌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만드는 속도’에만 취해서 정작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다듬는 과정은 통째로 생략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AI가 뱉어낸 결과물을 그대로 화면에 올리는 건 기획이 아닙니다. 그건 그냥 재료를 조리도 안 하고 손님상에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AI로 서비스를 만드는 속도가 빨라졌다면, 그만큼 아낀 에너지는 '어떻게 하면 고객이 더 편할까?'를 고민하는 데 써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만드는 과정이 쉬워졌다는 이유로 결과물을 다듬는 최소한의 노력을 생략하곤 합니다.

고객이 결과를 보고 '이걸 어떻게 써야 하지?'라고 고민하게 만든다면 그건 명백한 기획의 패배입니다. 기업의 진짜 실력은 AI로 기획하고 개발하더라도 고객이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깎고 다듬는 지루한 수작업에서 나옵니다.


쓰기 편한 화면은 고객을 위해 끝까지 고민한 실력

비즈니스에서 고객의 시간을 뺏는 건 가장 큰 불편함입니다. 고객은 서비스를 배우러 온 게 아니라 그저 자기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을 뿐입니다.

어렵게 설명하는 걸 실력으로 착각하고, 복잡한 기능을 기술력으로 포장하는 건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가장 쉬운 글이 가장 깊은 이해도를 증명한다'는 말처럼 서비스도 가장 쉬운 경험이 기업의 기술력을 가장 잘 증명합니다.

결국 본질은 배려입니다. 내가 한 번 더 고민하면 상대방이 한 번 더 편해진다는 걸 믿고, 그 귀찮음을 견디는 성실함이 서비스의 품격을 결정합니다.

단순함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얼마나 성실하게 고민했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들이 고객에게 또 다른 숙제가 아니라 진짜 도구가 되었으면 합니다.

게으름을 실력으로 포장하지 않는 성실함에서부터 진짜 서비스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