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방식

'님' 호칭 뒤에 숨은 수평적 문화의 함정

Ko_Peter 2026. 3. 24. 08:00

 

오늘날 스타트업을 상징하는 매력적인 단어 중 하나는 '수평적 문화'입니다.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르고, 직급을 없애며, 인턴부터 대표까지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환경이라고 자랑합니다.

취업 시장에서 이런 문화는 인재를 끌어모으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수평을 외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대표의 의중대로 흘러가는 이른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 식 의사결정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구성원들은 서서히 입을 닫기 시작합니다. 내 의견이 서비스나 제품에 반영될 것이라는 기대 대신 '어차피 대표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할 텐데 굳이 내 에너지를 써서 반대 의견을 내야 할까?'라는 생각이 조직 전체에 퍼집니다.

이것이 바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짜 수평주의'의 덫입니다. 우리는 이제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어설픈 수평적 문화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면, 차라리 생존을 위해 '건강한 수직적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죠.


조직의 에너지를 무의미하게 갉아먹는 '소통의 낭비'

스타트업 리더들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 중 하나는 '나는 소통을 많이 하니까 우리 조직은 수평적이다'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통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의 질과 목적입니다.

리더가 이미 마음속에 답을 정해두고 팀원들을 모아 자신의 생각을 '설득'하려 드는 순간, 그 자리는 아이디어를 나누는 회의실이 아니라 리더의 아이디어를 확인받는 장소가 되어버립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소통 비용'입니다. 결론이 정해진 사안을 두고 팀원들의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수차례 회의를 거듭하는 것은 심각한 시간 낭비입니다.

또한, 팀원들은 리더의 입맛에 맞는 논리를 개발하는 데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이는 본질적인 업무가 아닌, 리더의 비위를 맞추는 '가방끈 긴 아부'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초기 스타트업 생존을 위한 '정직한 수직주의'의 필요성

가짜 수평주의가 무서운 진짜 이유는 조직 내에 ‘냉소주의’가 뿌리 내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리더가 겉으로만 의견을 묻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행위는 구성원들에게 '당신의 생각은 우리 회사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메시지로 전달됩니다.

이런 환경에서 팀원들은 열정 대신 눈치를 먼저 배웁니다. 앞에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뒤에서는 '또 시작이네'라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조직은 결코 멀리 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초기 스타트업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차라리 '명확한 권한과 책임이 따르는 수직적 구조'가 더 필요해 보입니다. 스타트업의 본질은 '생존'과 '속도'에 있습니다. 모든 팀원의 의견을 조율하고 합의를 이끌어내기에는 시장의 변화가 너무나 빠릅니다. 때로는 논리적인 설득보다 리더의 직관과 결단에 의한 빠른 실행이 생존 확률을 높이기도 합니다.

수직적 문화가 반드시 구시대적인 독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리더가 '이 결정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지금은 속도가 중요하니 이번에는 내 방향대로 가보자'라고 솔직하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책임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밝히는 '정직한 수직주의'는 오히려 구성원들에게 '지금은 리더를 믿고 실행에 집중할 때'라는 명확한 목표 의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정보는 수평화하고, 결정은 수직화하는 건강한 균형

수직적 문화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보의 공유'입니다. 흔히 말하는 권위주의적인 수직 문화는 리더가 정보를 독점하고 명령만 내리는 구조입니다. 반면, 건강한 스타트업의 문화는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되 결정의 책임은 리더가 지는 구조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리더는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구성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해야 하며, 결정된 이후에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데이터를 바탕으로 투명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아마존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반대하되 승복하라(Disagree and Commit)'가 바로 이 개념입니다. 충분히 토론하고 반대할 기회를 주되 결정이 내려진 후에는 자신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그 결정이 성공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돕는 문화입니다. 이것이 가능해질 때 조직은 '속도'와 '창의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습니다.


쿨해 보이는 '형식'을 버리고 우리 팀만의 '생존 방식'을 선택하세요

수평적 문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조직이 성과를 내고 생존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스타트업이 '우리는 스타트업이니까 평등해야 해'라는 강박 때문에 수평적 문화를 내세우느라 소중한 시간을 낭비합니다. 겉모습만 화려한 수평적 문화는 리더를 기만하고 팀원들을 지치게 만들 뿐입니다.

이제는 조직의 성숙도와 현재 처한 상황에 맞춰 솔직한 문화를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어설픈 민주주의보다 강력한 리더십과 투명한 정보 공유가 훨씬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회사의 호칭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목표를 위해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가'를 모든 구성원이 명확히 이해하고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팀에 가장 잘 맞는 '진짜 일하는 방식'을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솔직함이 담긴 조직 문화야말로 어떤 위기에서도 팀을 하나로 묶어주는 가장 강력한 생존 무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