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인기 치킨 브랜드 '페리카나'의 공식 SNS에 사과문이 올라왔습니다. 부적절한 밈을 사용했다는 게 이유였죠. SNS에서 한창 유행하던 소재였지만, 불륜이라는 민감한 키워드가 엮여 있다 보니 브랜드가 가져다 쓰기엔 분명 선을 넘은 면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부터 힙하다는 스타트업까지, 야심 차게 올린 게시물이 순식간에 '비호감'의 상징이 되어 사과문과 함께 사라지는 광경을 우리는 너무 자주 봅니다.
도대체 왜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기업들이 이런 빤한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다들 '가짜 숫자'에 눈이 멀어 있기 때문입니다.
1. 조회수가 높다고 무조건 성공이 아니다
요즘 브랜드 마케터, 특히 SNS 담당자들의 성적표는 조회수나 공유수 같은 숫자로 결정됩니다. 보고서에 찍히는 숫자가 커야 '일 좀 한다'는 소리를 듣고 내부 평가도 잘 나오니까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브랜드의 색깔을 고민하기보다는 일단 어떻게든 눈길을 끌어서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는 데 에너지를 씁니다.
회의실 풍경도 비슷합니다. "우리도 좀 MZ스럽게 가야 하는 거 아냐?", "요즘 이게 유행이라는데 우리도 태워보지?", "AI로 만들면 뚝딱이라며?" 같은 말들이 오가면 실무자들은 마음이 급해집니다. 유행을 안 따르면 마치 감이 떨어지는 팀처럼 보일까 봐 겁이 나거든요.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봅시다. 조회수 100만이 찍혔다고 해서 그게 다 우리 물건 사줄 고객일까요? 자극적인 밈을 써서 억지로 끌어모은 수치는 사실 아무 의미 없는 '거품'입니다.
사람들은 그저 지나가다 한 번 웃고 말 뿐, 그 치킨을 시켜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합니다. 오히려 그 브랜드를 즐겨 찾던 단골들에게 불쾌감만 남긴다면 그 숫자는 성공이 아니라 명백한 실패입니다.
2. 우리답지 않은 유행어는 오히려 독이 된다
밈은 기본적으로 남의 목소리를 빌려오는 일입니다. 인터넷 유행어는 그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모든 브랜드에 어울리는 건 절대 아니죠.
가령, 페리카나처럼 정겨운 이미지가 자산인 브랜드가 자극적인 밈을 쓰는 건 마치 점잖은 어른이 관심을 끌겠다고 억지로 힙합 바지를 뺏어 입은 것만큼이나 어색합니다.
문제는 이런 '어색한 연출'이 실제 비즈니스에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SNS에서 밈을 보며 낄낄거리는 구경꾼들이 전부 우리 고객이 될 거라는 건 마케터들의 착각일 뿐입니다.
조회수 대박에 좋아해 봤자 정작 결제창까지 따라오는 팬이 없으면 브랜드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떠들썩한 구경꾼 수만 명이 아니라 조용히 우리를 지지해 주는 1000명의 단골입니다.
3. 브랜드의 철학을 담은 마케팅이 오래 간다
그렇다면 밈 말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답은 브랜드의 철학에 있습니다.
우리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정성, 고객이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며 느꼈던 아주 작은 감동, 혹은 우리 브랜드가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밈처럼 한 번에 '빵' 터지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은근하게 쌓여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우리 브랜드만의 단단한 성벽이 됩니다.
KCC건설의 '문명의 충돌' 광고가 좋은 예입니다. 특별한 유행어나 밈 없이도 현실적인 결혼 생활을 담담하게 보여준 덕분에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브랜딩의 정석으로 불리며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며칠이면 촌스러워지는 밈과 달리 보편적인 공감을 산 이야기는 힘이 셉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고객의 기억에 남는 건 잠깐 웃고 마는 농담이 아니라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진심이기 때문입니다.
4. 우리만의 색깔을 지켜야 끝까지 살아남는다
브랜드 마케팅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향해야 합니다. 조금은 느리고 투박하더라도 진솔한 이야기 하나가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때 브랜드는 단단해집니다.
내부 보고서에 필요한 숫자의 압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당장 눈앞의 숫자를 위해 브랜드의 품격을 파는 짓은 그만둬야 합니다. 아무리 실력 좋은 마케터라도 매번 선 넘는 밈으로 숫자를 늘릴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브랜드 마케팅은 단 한 번의 실수로 회사를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는 무게감 있는 일입니다. 매체가 바뀌고 유행이 변해도 결국 지갑을 열게 하는 건 '나를 이해해 준다'는 느낌입니다
시장에 끝까지 남는 브랜드는 유행을 제일 잘 따라 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어떤 유행이 휘몰아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과 목소리를 지켜낸 브랜드입니다.
숫자의 화려함에 가려져 우리가 진짜 전해야 할 가치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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