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가 공개된 후 온라인은 그야말로 뜨거운 논쟁의 장이 되었습니다. 그 열기는 호평보다는 날 선 혹평에 가까웠죠. 작품의 개연성이나 연출을 두고 시청자들의 실망 섞인 반응이 우후죽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그 비난의 수위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감상평을 넘어 제작진과 배우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지는 분위기 속에서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두 편의 글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먼저 허지웅 작가님이 이런 글을 남기셨더군요. '영화에 대해 자기만의 평점을 매기는 건 자유다. 하지만 비평을 넘어 저주를 퍼붓는 건 다른 문제다.' 비슷한 시기에 황석희 번역가님 또한 자신의 공간에 결을 같이하는 생각을 남기셨습니다. 두 분이 서로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공통적으로 짚어낸 지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비평의 자유가 어느덧 누군가를 향한 '저주'로 변질되기 쉬운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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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저는 브랜드 마케터들의 현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브랜드들은 늘 이런 서슬 퍼런 심판대 위에 서 있습니다. 허지웅 작가가 말한 ‘저주’는 마케터들에게 결코 남 일이 아닙니다. 영화 한 편에도 저주가 붙는 시대인데, 하물며 자신의 돈과 시간을 쓰는 브랜드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 화살이 얼마나 날카로울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죠.
지금의 대중은 이미 '화가 날 준비'가 되어 있는 엄격한 비평가들과 같습니다. 이런 초예민 시대에 마케팅을 한다는 , 언제든 우리 브랜드가 그 저주의 과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 마케터에게 사과는 단순히 도덕적인 선택이 아닙니다. 그 저주가 우리 브랜드의 숨통을 죄기 전에 끊어내야 하는 가장 강력한 ‘생존 전략’입니다.
보통 위기가 터지면 다들 '빨리 사과해서 불부터 꺼!'라고 말합니다. 대응이 늦으면 침묵은 무시로, 무시는 기만으로 읽히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마케터들은 진짜 위기에 빠집니다. 비난이 무서워 사실관계도 확인되지 않은 일까지 덥석 사과해버리는 경우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하지도 않은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생존 전략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화난 군중에게 더 큰 먹잇감을 던져주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사과는 철저히 사실에 기반해야 합니다.
사실이 아닌데 사과부터 하면, 나중에 진실이 밝혀졌을 때 브랜드는 ‘거짓말쟁이’라는 더 큰 낙인을 찍히고 영원히 회생 불가능한 저주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진지한 사과란 무조건 엎드리는 비굴함이 아니라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우리 브랜드를 지켜내는 용기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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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험악한 시대에 어떻게 사과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저는 '사실'과 '감정'을 철저히 분리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우리 잘못이 명확하다면 뼈아프더라도 즉시 인정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잘못이 아니거나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정중하고 투명하게 선을 그어야 합니다.
이때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방어선이 있습니다. 바로 ‘고객의 불편함’에 대한 공감입니다. '저희는 잘못이 없으니 사과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비난은 저주로 진화합니다.
진짜 생존을 아는 브랜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의 의도와 상관없이 저희 브랜드를 믿어주신 분들께 이런 걱정과 불쾌함을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합니다."
잘못의 유무를 따지기에 앞서, 우리 때문에 누군가의 기분이 상했다면 그 감정에 대해서는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논리로는 해명하면서 마음으로는 공감하는 것. 이것이 잘못된 비난을 멈추게 하는 진지한 사과의 핵심입니다.
이 생존을 위한 사과에는 반드시 세 가지 장치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변명 없는 인정'입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같은 말은 분노한 대중에게 기름을 붓는 꼴입니다. 둘째는 '구체적인 대책'입니다. 비난을 멈추게 하는 건 미안하다는 백 마디 말보다 '어떻게 고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변입니다. 마지막은 '지속적인 태도'입니다. 소나기만 피하자는 식의 일시적인 사과는 금방 탄로 납니다. 약속한 대책이 실행될 때까지 낮고 진지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만이 브랜드의 ‘격’을 증명하고 생존을 보장합니다.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억울해서 잠 못 드는 밤도 많을 겁니다. 정성을 다한 진심이 난도질당할 때의 무력감은 마케터만이 알죠. 저 역시 이런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 위기는 브랜드의 진짜 신뢰를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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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박수칠 때는 실력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닥을 치는 위기의 순간,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사과의 기술이 그 브랜드의 진짜 생존력을 보여줍니다.
진지하게 사과할 줄 아는 브랜드는 좀처럼 망하지 않습니다. 고객들도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브랜드는 없다는 걸요. 그들이 정말 원하는 건 신처럼 무결한 존재가 아니라 잘못을 저질렀을 때 비겁하게 숨지 않고 '미안합니다, 고치겠습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인간적인 진지함입니다.
험악한 시장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브랜드는 가장 완벽한 브랜드가 아니라 가장 진지하게 책임질 줄 아는 브랜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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