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관찰

장밋빛 미래를 말하는 대표와 오늘을 버티는 직원들

Ko_Peter 2025. 10. 27. 14:05

 

기자나 에디터로 일하다 보면 기업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대표나 임원, 팀장처럼 회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이들이죠. 인터뷰를 하다 보면 그들의 말에는 비슷한 결이 있습니다.

열정이 회사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자신감,
사람을 가장 큰 자산으로 여긴다는 철학,
그리고 직원들과 함께 성장해 왔다는 자부심.

하지만 인터뷰가 끝난 뒤 현장에서 만나는 실무자들의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회사가 성장할수록 하루가 더 빠듯해지고, 일이 늘어날수록 자신에게 남는 건 피로뿐이라고 말합니다.

브랜드가 잘된다는 소식이 반갑지만, 그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하는 건 결국 자신들이라고 피곤한 얼굴로 덧붙입니다. 열정보다 체력으로 버틴다는 말이 나올 때면 ‘성장’이라는 단어가 사람마다 얼마나 다르게 받아들여지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는데,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일하던 스물여섯 살 청년이 과로 끝에 숨졌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이 브랜드는 ‘줄 서는 빵집’으로 불리며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창업자는 여러 강연에서 좋은 공간이 좋은 경험을 만든다고 말하며 브랜드의 철학을 강조해 왔습니다. 유튜브나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그의 성공 철학이 늘 화제가 됐습니다. 직원이 브랜드의 핵심이라는 언급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말과는 다르게, 기사 속 직원은 밥 한 끼 먹을 여유도 없이 하루 15시간 가까이 일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입사한 지 1년 남짓, 매주 80시간 가까운 노동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회사는 고공 매출을 자랑했지만, 그 뒤에서 누군가의 청춘이 서서히 소모되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비극이 아닙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 특히 스타트업에서 말하는 ‘사람 중심의 성장’이 얼마나 현실과 멀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더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말이 실무자의 하루 속에서 시간과 휴식, 안전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기업이 함께 성장했다고 외쳐도 그 ‘함께’에는 이름이 사라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구조적으로 반복됩니다. 리더들은 외부를 향해 멋진 스토리와 문장을 만들어내지만, 내부에서는 여전히 그 문장들을 버텨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리더가 말하는 열정은 실무자에게 헌신으로 번역되고, 리더의 도전은 예측 불가능한 일정으로 이어집니다. 실무자는 비전의 주체가 아니라 수단으로 남습니다. 이 간극이 커질수록 조직은 사람을 잃고, 그 자리를 숫자와 지표가 대신하게 됩니다.

저는 이런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누군가는 회사의 성공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는 그 성공을 감당하느라 지쳐 있었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전혀 다른 시간 위를 걷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느꼈습니다. 기업이 정말 사람 중심이라면,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의 하루가 먼저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한때 ‘브랜드 철학’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쓰였습니다. 하지만 철학은 말로 쓰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직원이 힘든 하루를 보내면서도 이 회사는 나를 생각한다고 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철학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기업이 그 믿음을 잃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함께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숫자나 외형적 성과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지킬 수 있는 환경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회사가 말하는 비전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의미로 다가올 때 그 조직은 제대로 움직입니다.

이제는 '무엇을 이뤘는가?'가 아니라 '누가 그 성장을 가능하게 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열정을 말하기 전에 그 열정을 지탱할 구조를 고민해야 합니다.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기 전에 오늘의 현실을 함께 버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성공한 브랜드의 언어가 더는 사람의 삶을 덮지 않기를 바랍니다. 함께 성장한다는 말이 누군가의 이름을 지우는 표현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업의 말과 사람의 현실이 같은 온도로 만날 때 비로소 그 성장은 진짜가 됩니다.

 

기사 출처: [단독-런베뮤 과로사 의혹] ‘주 80시간 초장근로’ 스물여섯 청년 숨지다